📑 목차
본 글은 「잊혀진 전통놀이란 무엇인가」에서 다루는 개별 놀이 사례로, 전통놀이가 사회 변화 속에서 어떻게 전승되거나 변형되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은 상여놀이를 단순한 장례 의례가 아닌, 노동과 의례 속에 내재된 잊혀진 전통놀이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글입니다. 오늘날 상여놀이는 죽음과 연결된 행위라는 이유로 놀이의 범주에서 제외되었지만, 민속학적 관점에서는 분명한 놀이 구조를 지닌 문화 행위였습니다.
이 글은 상여놀이가 왜 놀이로 기록되지 못했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잊혀진 전통놀이가 되었는지를 문헌과 사료를 통해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잊혀진 전통놀이가 반드시 ‘어린이 놀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상여놀이를 들여다보는 일은, 놀이를 웃음이나 오락으로만 한정해 온 현대적 인식을 다시 질문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상여놀이의 기원과 생활사적 배경
상여놀이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송 문화의 한 형태입니다. 상여는 단순한 운구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가 죽음을 함께 감당하기 위해 만든 이동 구조물이었습니다. 『동국세시기』, 『해동죽지』, 『조선민속지』 등의 기록에는 상여 행렬 중 노래와 구호, 박자가 반복되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는 상여 운반이 단순 노동이 아니라 집단 리듬을 필요로 하는 행위였음을 보여줍니다. 상여놀이는 바로 이 반복 노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잊혀진 전통놀이의 한 형태입니다. 이러한 반복과 박자의 결합은 상여 운반을 단순한 육체 노동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놀이 구조가 되었습니다.
다시래기와 상여놀이
상여놀이는 상가에서 다시래기를 할 때, 빈 상여를 메고 상엿소리를 부르며 장난과 연희를 곁들여 노는 잊혀진 전통놀이입니다. 실제로 시신을 운반하는 운상運喪이 아니라, 주검을 싣지 않은 상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상여놀이는 본격적인 출상 이전에 행해지는 놀이적 의례라는 성격을 지닙니다. 이 점에서 상여놀이는 장례 의례 그 자체가 아니라, 의례를 가능하게 만드는 놀이적 장치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 놀이는 상두꾼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고, 상주를 위로하며 밤을 새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상여놀이는 전국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황해도에서는 이를 ‘생여돋음’이라 하였고, 강원도·경기도 지역에서는 ‘손모듬’ 또는 ‘걸걸이’라 불렀습니다.
경상도에서는 ‘대돋음’ 혹은 ‘개도덤’, 전라도 지역에서는 ‘상여어르기’, ‘밤다래’, ‘대울림’ 등으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명칭의 분화는 상여놀이가 정형화된 하나의 놀이가 아니라, 각 지역의 생활 조건과 공동체 감정에 따라 변형된 살아 있는 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상여놀이가 특정 지역에 한정된 행위가 아니라, 한국 전통 장례문화 전반에 분포한 잊혀진 전통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상여놀이의 연행 구조와 놀이적 성격
다시래기의 한 절차로 연행되는 상여놀이는 극적 상황을 재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이미 다시래기에서 연극성과 놀이성이 강한 공연이 이루어진 뒤이므로, 상여놀이 자체에서는 별도의 극을 구성하기보다는 상엿소리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즉, 상여놀이는 독립된 놀이이면서도 다시래기 전체 흐름 속에서 기능하는 의례 내 놀이 구조를 형성합니다.
최근에는 무대 공연화가 이루어지면서, 상여놀이가 극의 도입부에서 <상엿소리>를 부르며 입장하는 형식으로 연행되기도 합니다. 이는 과거 상가 마당이나 골목에서 이루어지던 놀이가 현대 공연 환경에 맞게 변형된 사례로, 잊혀진 전통놀이가 현대적으로 재맥락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즉, 상여놀이는 의례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의 감정을 풀어내는 완충 지대가 된 셈입니다.
상엿소리의 종류와 기능
상여놀이에서 핵심을 이루는 요소는 <상엿소리>입니다. 상엿소리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며, 대표적으로 <염불소리>, <에소리>, <제화소리>, <하직소리>, <천근소리>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염불소리>는 다시 긴염불, 중염불, 자진염불 등으로 세분됩니다. 실제 연행에서는 이 모든 소리를 다 부르지 않고,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선택적으로 가감합니다.
상엿소리는 단순한 애가가 아니라, 집단의 호흡을 맞추고 정서를 공유하게 만드는 놀이적 노래입니다.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반복되는 후렴과 장단을 통해 감정을 완충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상여놀이가 단순한 장례 의식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잊혀진 전통놀이였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기능은 상엿소리가 애도의 노래이면서도 동시에 참여를 유도하는 놀이의 핵심 요소였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역 사례로 본 상여놀이의 실제 모습
황해도 옹진 지역에서는 호상好喪일 경우, 상두꾼들이 북·장구·꽹과리를 치며 빈 상여를 메고 마을을 도는 상여놀이가 전승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여 앞에 탄 사람이 상주 흉내, 재산 분배 흉내, 곡하는 시늉 등을 하며 놀이를 벌였습니다. 상가에서는 이들에게 제상을 차리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모은 돈은 상포계에 보태 공동체 차원의 비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상여놀이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상부상조 구조 속에서 기능한 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는 ‘대돋음’이라 불리는 상여놀이가 행해졌습니다. 출상 전날 저녁, 상두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실제 출상과 동일한 방식으로 상엿소리를 부르며 놀이를 펼쳤습니다. 이 지역에서 말하는 상여놀이의 ‘재미’란 웃음을 유발하는 난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슬픔을 공유하게 만드는 정서적 공감이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여기서의 ‘놀이’는 무질서한 흥청거림이 아니라, 슬픔을 공동체적 행위로 전환하는 정서적 장치였습니다. 이는 상여놀이가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고유한 잊혀진 전통놀이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잊혀진 전통놀이 빈상여놀이, 놀이와 의례가 겹쳐지는 순간
상여놀이의 기본적인 놀이 방법은 상두꾼들이 주검을 싣지 않은 빈 상여를 메고 실제 운구와 동일한 방식으로 걷는 것입니다. 앞소리꾼이 선소리를 메기면, 상두꾼들이 후렴을 받으며 발을 맞추어 이동합니다. 이는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출상을 앞두고 상여를 메는 호흡과 장단을 사전에 맞추는 실질적인 연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상여놀이는 의례의 예행이자 놀이로 기능한 잊혀진 전통놀이입니다. 이처럼 상여놀이는 실제 장례를 앞두고 몸과 마음을 동시에 준비시키는 놀이적 예행 의례였습니다.
상여놀이가 상가 마당에서 펼쳐질 경우, 상엿소리가 시작되면 상가에서는 상두꾼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합니다. 일반적으로 술과 안주, 꼬지떡, 팥죽, 닭죽 등이 준비되며, 상두꾼들은 이를 먹고 마시며 밤새 놀이판을 이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사위를 상여에 태우거나, 어깨에 매달아 술과 음식을 받아내는 장난도 벌어집니다.
또한 장난기가 많은 상주의 친구가 나서서 거짓 상주 노릇을 하며 곡을 하거나, 가당찮은 넋두리를 늘어놓고 문상을 반복하는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겉으로 보기에 웃음을 유발하는 난장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슬픔을 공유하고 완화하는 정서적 공감의 장입니다. 상주 역시 이 놀이 속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되며, 이는 상여놀이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슬픔을 공동체적으로 다루는 잊혀진 전통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지역별 빈상여놀이의 변이와 명칭
경상북도 안동에서는 ‘대돋음’이라 불리는 상여놀이가 전승되었습니다. 이 놀이는 망인의 나이가 70~80세를 넘는 호상이고, 상주의 나이가 50세 내외이며 가정 형편이 비교적 유복한 경우에만 허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상여놀이가 무질서한 놀이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조건 아래에서만 허용된 의례적 놀이였음을 의미합니다.
대돋음에서는 출상 전날 저녁 상두꾼들이 미리 모여 빈 상여를 메고 실제 출상과 같이 상엿소리를 부르며 놀이를 벌였습니다. 이때 상주와 친척들은 상두꾼과 마을 어른들을 정식으로 초청하여 대접하였습니다.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는 골목길에 횃불을 밝히고, 아들·딸·친척·친구의 집을 돌며 상여놀이를 하는 방식이 전해집니다. 상여가 공동우물을 지날 때는 우물을 덮어두는 것이 관례였으며, 이는 죽음의 기운이 생활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려는 민속적 인식이 반영된 행위입니다. 상여가 집 근처에 오면 유족이 먼저 제물을 차려 곡하며 맞이하고, 상여꾼들에게 술을 대접하는 절차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상여놀이가 마을 전체를 하나의 의례 공간으로 만드는 잊혀진 전통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대구리’와 원채 놀이― 노동 조직 속 빈상여놀이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는 ‘대구리’라 불리는 빈상여놀이가 전해집니다. 상두계원들이 출상 전날 저녁에 모여 상여를 받치는 원채를 만든 뒤, 실제 상여는 얹지 않고 원채만 들고 앞소리를 메기며 상여가 나가는 것처럼 걷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두꾼들은 상주에게 비용을 마련하도록 유도하기도 하는데, 이는 놀이이자 공동체 운영 방식의 일부였습니다. ‘대구리’는 상여놀이가 노동 조직과 경제 구조 속에서 기능한 잊혀진 전통놀이였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는 상여놀이가 단순한 정서 위로를 넘어, 공동체 운영과 비용 분담까지 포함한 실천적 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무형문화재로 전승된 빈상여놀이 사례
진도에서 전승되는 국가무형문화재 ‘진도다시래기’ 역시 빈상여놀이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진도에서는 이를 ‘상여 어울린다’ 또는 ‘대어린다’라고 부르며, 출상 전날 밤늦도록 놀이판을 벌여 상주와 유족의 슬픔을 덜어줍니다. 놀이가 끝나면 유족들은 상두꾼들에게 술과 함께 팥죽이나 닭죽을 대접하며 다음 날 상여를 잘 메어달라는 부탁을 전합니다.
이는 상여놀이가 의례 수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놀이적 장치였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서울특별시 암사동 바위절 마을의 호상놀이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장수하고 유복한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 출상 전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빈 상여를 조립하고 선소리꾼과 상여꾼이 만가를 주고받으며 발을 맞춥니다.
이후 인근 마을을 돌며 걸립을 하는데, 선소리꾼인 요령잽이가 앞에서 상여를 이끌고, 36명의 상여꾼이 네 줄로 서서 이동하는 형식을 갖춥니다. 이때 부르는 요령잡기소리와 향도가는 이 지역 상여놀이의 특징적인 선소리입니다.
빈상여놀이의 민속적 의미
빈상여놀이는 유족을 위로하고 상두꾼들이 호흡을 맞추는 실천적 목적과 더불어, 망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민속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길로 인식했던 전통 사회에서는, 망인이 즐겁게 떠나야 산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상여놀이는 슬픔을 억누르는 행위가 아니라, 슬픔을 놀이로 전환하여 공동체가 함께 감당하는 의례형 잊혀진 전통놀이로 자리 잡았습니다.
왜 상여놀이는 놀이로 기록되지 않았는가
상여놀이가 잊혀진 전통놀이가 된 이유는 놀이성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놀이를 기록하는 기준 자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에 정리된 전통놀이 목록은 대부분 어린이 놀이, 명절 놀이, 유희 중심 놀이로 구성되었습니다.
죽음과 연결된 행위는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엄숙한 의례로만 분류되었습니다.
그 결과 상여놀이는 놀이였지만 놀이로 인정받지 못한 잊혀진 전통놀이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상여놀이는 놀이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놀이를 규정하는 시선이 협소했기 때문에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상여놀이 기록의 또 다른 공백은 참여자 기록의 부재입니다. 상여소리에는 여성의 후렴 참여, 아이들의 행렬 동참이 존재했지만 문헌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놀이 기록이 지배층·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는 빨래터 놀이, 물 긷기 놀이, 나무하기 놀이와도 동일합니다. 상여놀이는 이렇게 기록되지 못해 사라진 잊혀진 전통놀이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놀이의 범주를 다시 묻다 ― 상여놀이가 던지는 질문
상여놀이를 잊혀진 전통놀이로 바라보는 시선은, 단지 하나의 장례 풍속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놀이’를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 그리고 그 정의가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되묻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놀이란 대체로 즐거움, 여가, 오락, 소비와 연결되어 이해됩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는 죽음과 노동, 슬픔이 결합된 상여놀이가 놀이의 범주에 포함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 놀이란 반드시 즐겁기만 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견디기 위해 공동체가 만들어낸 구조적 장치에 가까웠습니다.
상여놀이는 바로 이러한 놀이 인식의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입니다. 상여놀이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거나 희화화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개인에게 집중되는 슬픔과 부담을 공동의 리듬 속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상엿소리와 발걸음, 역할이 분화된 참여 구조는 슬픔을 억누르기보다는 함께 나누고 견디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상여놀이는 감정 노동을 완화하기 위한 놀이적 장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상여놀이가 어린이 중심의 놀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현대에 전통놀이로 분류되는 다수의 놀이가 어린이 놀이로 재편된 것과 달리, 상여놀이는 성인 남성, 여성, 노인, 아이가 모두 참여하는 전 연령적 놀이 구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상여소리의 후렴에 여성과 아이가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마을 사람들이 구경과 반응으로 놀이에 동참하는 구조는 상여놀이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놀이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여 양상은 기록으로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이는 상여놀이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의 시선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여놀이가 오늘날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의례와 놀이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근대적 사고 방식에 있습니다. 근대 이후 의례는 엄숙하고 정제된 행위로, 놀이는 가볍고 비본질적인 행위로 분리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분법 속에서 상여놀이는 의례도 아니고 놀이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상여놀이는 장례 절차에서 제거되거나, 민속 공연의 일부로 축소되어 전승되는 방식으로만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여놀이를 잊혀진 전통놀이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면, 놀이의 본질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집니다. 놀이는 반드시 즐거워야 하는가, 놀이는 생산성과 무관해야 하는가, 놀이는 죽음과 분리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상여놀이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다른 답을 제시합니다. 상여놀이는 즐겁지 않아도 놀이일 수 있었고, 노동과 결합되어도 놀이가 되었으며, 죽음을 다루면서도 놀이의 구조를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상여놀이는 단절된 과거의 풍속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놀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놀이를 통해 감정을 조절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며, 삶의 무게를 나누었던 방식은 비록 현재의 장례 문화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그 구조와 의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상여놀이를 잊혀진 전통놀이로 다시 기록하는 일은, 과거의 놀이를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삶을 견뎌온 인간의 방식을 이해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잊혀진 상여놀이의 문화사적 의의
상여놀이는 노래와 춤, 흉내와 연행을 통해 죽은 이를 보내는 전통 위에 성립한 놀이입니다. 유교 장례 의례가 정착되기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민속 행위로, 죽음을 공동체 차원에서 감당하려는 한국인의 민속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점에서 상여놀이는 단순한 장례 풍속을 넘어, 의례 속에 내재된 잊혀진 전통놀이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상여놀이는 놀이의 기본 요소를 명확히 갖추고 있습니다. 첫째, 반복성과 규칙성이 존재합니다. 상여소리는 일정한 장단을 유지하며 반복됩니다. 둘째, 역할 분화가 명확합니다. 선소리꾼, 후렴꾼, 상여꾼이 구분됩니다. 셋째, 즉흥성이 존재합니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 가사가 변주됩니다. 넷째, 참여와 관람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행렬에 참여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도 소리에 반응합니다. 이러한 요소는 상여놀이가 단순 의례가 아닌 놀이 구조를 지닌 연행 문화였음을 증명합니다.
상여놀이의 핵심은 상여소리입니다. 상여소리는 슬픔을 표현하기 위한 노래이면서 동시에 보행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적 노래입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상여소리 자료를 보면, 일정한 박자가 반복되며 노동 강도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곡식 타작의 박자 놀이, 물 긷기 노동의 리듬과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즉, 상여놀이는 노동형 잊혀진 전통놀이의 연장선상에 위치합니다.
삶을 견디기 위한 놀이의 기억
상여놀이는 놀이였지만 놀이로 기록되지 못한 문화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삶을 견디기 위해 만든 구조입니다. 상여놀이는 죽음을 놀이로 소비한 행위가 아니라, 죽음을 함께 견디기 위한 공동체적 선택이었습니다. 상여놀이는 웃음을 위한 놀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놀이의 본질이 반드시 즐거움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상여놀이는 공동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리듬과 참여를 통해 분산시키는 놀이 구조였습니다. 이 점에서 상여놀이는 오늘날 다시 조명되어야 할 잊혀진 전통놀이입니다. 놀이를 통해 삶과 죽음을 함께 이해했던 과거의 지혜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상여놀이는 오늘날 다시 연구되고 기록되어야 할 잊혀진 전통놀이입니다. 잊혀진 전통놀이를 재평가한다는 것은 과거의 놀이를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삶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상여놀이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놀이를 통해 인간이 감당해 온 삶과 죽음의 방식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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